과정은 정당했는가, 결과는 정의로웠는가
전문직인가, 기득권인가 —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지식 뒤에 숨은 권력, 기득권의 민낯
전문직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공기관이다. 판사, 검사, 의사, 기자는 모두 사회적 신뢰를 자산 삼아 권위를 행사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그 권위가 권력화되고, 책임은 뒤로 미뤄지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폭력시위 사건은 법원을 보호받지 못하는 공간으로 만들었고, 검찰의 정치적 눈치보기는 법 집행의 일관성을 허물었다. 의대 정원 확대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립은 환자 신뢰를 희생양 삼았고, 언론의 자유는 과거 독재 시대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제약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은 단 하나다: 불신이다.
무너지는 공정의 기둥
법원이 폭력에 침묵하고, 검찰이 수사를 미루며, 언론이 침묵하고, 의사가 집단 행동에 나서도 어느 누구도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각자의 논리는 있지만, 그 논리 속엔 국민은 없다. 법과 정의는 사라지고, 셈법만 남았다.
검사는 "기소는 재량"이라고 말하고, 판사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물러선다. 의사는 "정책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기자는 "회사 방침 때문에 쓸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이 말들은 모두 자기 방어일 뿐, 공공을 위한 책임은 찾기 어렵다.
직업적 책임은 특권보다 먼저다
전문직의 가장 큰 책임은 ‘모를 수 없다’는 데 있다. 판사는 어떤 판결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안다. 검사는 기소 유무가 정치적 논쟁이 될 것을 알고, 의사는 환자에게 미치는 생명의 무게를 외면할 수 없다. 기자는 한 줄의 문장이 누구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도 안다.
그런데 왜 그 책임은 다들 외면하는가?
전문직 권위는 법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라는 매우 유약한 토대 위에 쌓여 있는 것이다. 이 신뢰는 회복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지만, 배반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국민은 더 이상 ‘명패’를 보고 존중하지 않는다
이제는 누가 의사인지, 판사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 직업인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본다. 그리고 그 행동이 신뢰를 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전문직 사회는 지금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법대로 했다’, ‘지침에 따른 것’이라는 형식 논리만 되풀이하며,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심어린 자기 고백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내가 얼마나 책임을 다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권위가 다시 설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권위를 내려놓고, 책임을 먼저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