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과 일부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서 사법고시 부활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그 대안으로 다시 ‘사법고시’를 꺼내 드는 배경에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제도의 실패에 대한 실질적인 불만과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로스쿨 제도는 다양성과 접근성을 명분으로 도입되었다. 법조인이 특정 엘리트층에 독점되지 않도록,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법조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로스쿨 입학생 상당수는 상위권 대학 출신이며, 학비 부담과 긴 준비 기간 탓에 중산층 이하 계층의 진입 장벽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금수저 로스쿨’이라는 비판은 괜한 억측이 아니다.
또한 로스쿨 제도 아래에서도 사법시험 시절과 마찬가지로 폐쇄적 인맥 구조와 엘리트 중심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 조직 내 승진 시스템, 학연·지연에 기반한 줄서기 문화, 전관예우 문제 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그 카르텔을 더 정교하게 포장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법고시의 부활 주장은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법조 진입의 공정성을 다시 회복하자는 절박한 요구로 읽힌다. 시험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통해 누구에게나 법조인의 길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이는 지역·학력·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법조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상징적 제안이기도 하다.
물론 사법시험 제도가 완전무결했던 것은 아니다. 장기간의 준비, 낙오자 양산, 암기 중심의 시험 구조 등은 분명한 한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은 최소한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는 기억은 여전히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공정성이라는 가치 앞에서, 로스쿨 제도는 이를 대체하지 못했다.
사법고시를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로스쿨 제도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제도를 유지할 것인가, 병행할 것인가, 혹은 새로운 방식의 개혁을 모색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법적 권리를 위한 제도여야 한다는 점이다.
법조계는 공정과 정의를 다루는 영역이다. 그 문을 여는 열쇠가 특정 계층에게만 주어진다면, 사법정의의 출발선부터 잘못된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가 실현하고자 했던 ‘기회의 평등’이라는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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