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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말이 아니게 하는 사회: 해석을 강요하는 한국의 언어문화"

미디어바로 2025. 5. 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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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말을 해석하게 만드는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 될까?” 수능 언어영역 기출문제를 풀고 있는 한 수험생의 불만은 단순한 푸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는 한국 사회의 언어문화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에서 ‘말’은 곧 ‘해석’의 대상이며, 말은 말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제나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문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있다.

 

말보다 중요한 ‘맥락’?

한국어는 고맥락(high-context) 언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런 문화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갈등을 피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맥락을 고려하는 문화는 또한 큰 피로를 동반한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읽어낼 수 있도록’ 다양한 뉘앙스를 던져야 하고, 듣는 사람은 그 의도를 읽어내야 한다. 특히 권력관계가 얽힌 조직, 학교, 가정 내에서 이러한 언어 문화는 자주 소통을 방해하고, 사람들은 진심을 숨긴 채 말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직접적이고 솔직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결국 우리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해석’을 강요받게 된다.

 

해석 능력을 시험하는 수능 언어영역

이 문화는 수능 언어영역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수능 국어영역 문제는 단순한 독해를 넘어 필자의 태도, 의도,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해야 한다. 그 과정은 실제로 말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의미를 ‘맞추는’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다. 수험생은 출제자의 의도를 ‘추론’해야 하고, 정답은 단 하나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하나의 발언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에서는 오직 하나의 해석만을 정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현실적인 복잡성과 해석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비직설적 언어문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비직설적인 언어는 때때로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의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반에서 당연한 규범처럼 자리잡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기보다 억제하고 왜곡하게 된다. 갈등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직설적인 말을 꺼낼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고, 때로는 그런 표현을 ‘버릇없음’이나 ‘이기주의’로 간주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그냥 말하기”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내놓기보다는,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말을 감추고, 의미를 흐리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게 된다.

 

변화의 필요성

언어는 궁극적으로 소통의 도구다. 소통의 목적은 이해를 돕는 것이지, 해석의 퍼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물론 비직설적인 화법이 배려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 전반의 규범처럼 강요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는 비직설적인 표현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설적이고 명확한 소통도 존중받아야 한다. 수능 언어영역도 더 이상 말의 숨은 뜻을 추론하는 문제보다는 다양한 표현과 직설적인 소통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회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이 단순히 해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직설적인 언어가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배우되, 그것이 강요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효율적이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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